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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CTS
작성일시 : 2011-03-08
조회 :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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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의 희생은 오늘날까지 감동으로 다가오는데요. 1920년대 선교사로 활동했던 부친의 대를 이어 지금까지 한국교회와 북한복음화를 위해 일해온 한 외국인 선교사가 있습니다. 한국땅과 한국인을 사랑한 선교사, 아서 킨슬러 목사를 박새롬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 한국인 아내가 평양에 간 사이 킨슬러 목사는 선교보고와 감사편지 등을 영어로 번역합니다. 2004년 대북지원민간단체 등대복지회를 설립해 평양에 두유공장과 빵공장 건립에 앞장서온 킨슬러 목사는 지난해 이사장직을 내려놨지만, 여전히 북한주민돕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아서 킨슬러 목사의 부친은 1928년부터 평양신학교와 숭실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성경구락부를 만들고 고아들을 돌본 프랜시스 킨슬러 목사입니다. 양화진에 묻힌 부친에 이어 아서 킨슬러 목사도 한국과는 깊은 인연입니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신영순 사모와 결혼해 미국장로회 한국선교사로 온누리교회, 명성교회 초창기 영어예배를 담당하는 한편 여수, 순천 등을 돌며 시골교회를 돕고 공장신우회를 조직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서 킨슬러 목사 / 2대째 한국선교 2차 대전과 한국전쟁 때문에 한국은 여러면에서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교회 지도력이 커져서 제가 도운 것보다 도움받은 게 많습니다. 40여년 사역 중에 1998년 고향 평양을 다시 방문했던 기억은 잊을 수 없습니다. 아서 킨슬러 목사 / 2대째 한국선교 평양서 김치를 먹으면서 ‘아 그 맛이다’ 6살 때 고향을 떠났지만 평양김치 맛은 기억했어요. 북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북한주민복지와 복음화에 대한 관심과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고아, 장애인, 노인 등 북한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급식과 복지시설 마련에 앞장선 겁니다. 아서 킨슬러 목사 / 2대째 한국선교 두유와 빵공장을 같이 만들었습니다. 3개 있어요. 북에 대해 아픈 맘이 있죠. 먹을 것도 없고 겨울엔 난방도 안되니까요. WCC총회를 유치할 정도로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나고 있는 한국교회가 북한은 물론 어려운 나라들을 위해 나눔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하는 킨슬러 목사, 2대째 내려오는 파란눈 선교사의 한국사랑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CTS박새롬입니다. |